지난 5월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과 마포역 사이 구간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승객이 휘발유와 라이터형 토치를 이용해 열차 내부에 불을 지핀 것이다. 당시 열차에는 약 400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기관사와 시민들이 함께 소화기로 불을 껐고, 승객들이 선로를 따라 탈출하면서 다행히 대형 인명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화재가 수습된 후 언론은 기관사의 침착한 대응이 참사를 막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기관사 개인의 잘잘못으로 사고 대응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칫 그 이면의 도시철도 운영 전반에 내재한 구조적 취약성은 가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화재가 더 큰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데에는 무엇보다도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객실 내장재를 불연성·난연성 소재로 교체한 조치가 큰 역할을 했다. 구조적 취약성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한 결과였다. 이번 사건에서도 자칫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시스템의 부실은 무엇인지 제대로 살펴보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수도권 지하철 5~8호선 1인 승무 체계의 위험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고 당시 기관사는 열차를 운전하는 동시에 신고를 접수하고 관제와 통신을 주고받으며, 화재를 진압하고 승객 대피까지 안내해야 했다. 매뉴얼에는 방독면을 착용하고 화재 진압에 나서도록 명시돼 있지만, 당시 전동차를 운전하던 기관사에게는 그럴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사고 대응의 모든 부담이 기관사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현재 지하철 1~4호선은 기관사와 차장이 함께 근무하는 2인 승무 체계지만, 5~8호선은 기관사 1인이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런데 공사는 1~4호선 역시 완전 자동운전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1인 승무 전환을 추진 중이며, 서울시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공사의 인력 2,212명을 감축하려 하고 있다. 민간 자본으로 건설·운영되는 민자철도에서는 이보다 더 강도 높은 인력감축이 시도되고 있다. 신분당선은 기관사조차 없는 완전 무인운전(UTO·Unattended Train Operation) 도입을 앞두고 있고, 용인경전철은 역무 인력을 줄여 3개 역당 1명의 직원만 두는 '스마트 역사' 운영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이번 사고가 민자철도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열차 안에서 불이 났을 때 이를 인지하고, 신고하고, 초기 대응할 직원이 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 마포역과 여의나루역처럼 전동차 양측에 위치한 역에서 시민 대피를 돕는 역무원조차 없었을 수도 있다. 또 이번 사고는 다행히도 주말 오전, 비교적 한산한 시간대에 발생해 피해가 줄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출근 시간대였다면, 또는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많았더라면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응하려면 더 많은 인력과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시의 대규모 인력감축과 서울교통공사의 1~4호선 1인 승무 전환 시도, 민자철도의 무인운전 확대와 역사 무인화 시도는 모두 이익을 우선한 인건비 절감 조치의 일환이다. 이는 안전을 이윤과 맞바꾸려는 시도이며, 시민의 생명을 숫자로 환산하는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다. 서울시는 ‘적자’라는 이유로 교통공사의 대규모 인력 감축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공공기관은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수익성보다 중요한 가치임은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시민의 안전은 공공이냐 민자냐, 1~4호선이냐 5~8호선이냐로 구분될 수 없고, 구분되어져서도 안된다. 지금 도시철도에 필요한 것은 구조조정이나 1인승무 추진이 아니라, 충분한 안전인력의 확보다.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도시철도에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차별없이 보장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2025. 6. 3.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